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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태워야 빛이생깁니다.(불교포커스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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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꿈을이루는사람들 댓글 0건 조회 1,295회 작성일 18-08-3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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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태워야 빛이 생깁니다
여덟 번째 인연 - 구미 대둔사 주지 본원진오 스님
newsdaybox_top.gif2011년 10월 28일 (금) 10:53:08들돌 btn_sendmail.gifphilipol@hanmail.netnewsdaybox_dn.gif

영화 한 편으로 나라 안이 꽤나 요란스럽게 들썩거렸다.
‘도가니’는 같은 이름의 소설을 영화로 제작한 것인데
광주의 한 장애인학교에서 일어난 성폭행사건을 다룬 영화였다.

영화를 본 시민들은 분노했고
매스컴들은 앞다퉈 영화를 본 시민들의 분노를 고스란히 세상으로 날랐다.
영화 한 편이 말 그대로 세상을 사건의 이야기로 펄펄 끓는 도가니로 만들어버렸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뜻있는 이들이 나서 진상을 밝힐 것을 요구할 때는 꿈쩍 않던 이들도
사태가 심각해진 것을 알아차린 관계기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어둠 속에 묻혀버릴 것 같았던 사건의 진상은 재조사가 추진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더니
뒤이어 사건이 벌어진 학교에 대한 설립 인가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꾸무럭거린 세월에 비해 내려진 결정은 전광석화처럼 재빨랐고
당연하게도 학교법인 측은 그런 결정을 순순히 수용할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영화 ‘도가니’를 매개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뜻을 가진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시 뜻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라는
수없이 되풀이해서 들었으면서도 그 말을 등한히 여기고 살아온
하등 새로울 것 없는 교훈 하나를 떠올렸다.

여름을 사라지게 했을 만큼 지루하게 비 내린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방송에서는 연일 가을가뭄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을 나서는 날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나는 걱정 대신 즐거운 마음으로 가을길을 떠났다.
평일의 고속도로는 한산했지만 시간은 넉넉했다.
길은 멀어도 급할 것은 없었다.
가는 길의 끝까지 시속 80km로 가보자 작정했다.

전국에 가을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는 제대로 들어맞아서
가는 길 내내 비가 내렸고 산과 강과 들녘이 모두 그 비에 촉촉하게 젖고 있었다.
봄과 여름에 비를 맞은 나무는 잎이 윤택해지지만
가을비는 잎이 미처 색깔로 물들기도 전에 나무에서 지게 만든다.
수관을 닫은 줄기와 가지가 물에 젖은 나뭇잎을 이길 힘마저도 아껴두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복우산伏牛山이라니 소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일 테고
대둔사大芚寺라 하였으니 큰일 할 재목이 날 곳이라는 뜻일 테다.
짧지만 가파른 가을비에 젖은 산길을 차에 탄 채로 올랐다.
인적이 끊어진 길이라 미안함은 덜했다.
가파른 길의 끝에서 너른 평지가 펼쳐지고
그곳에 생각보다 오래고 큰 절이 나타났다.
아도阿道에 의한 5세기 창건의 이야기는 설화 속 이야기라 하더라도
고려 말 충렬왕 때 왕소군王昭君의 출가와 중창,
그리고 조선조 임진년 무렵 유정대사惟政大師의 중건과 승군 주둔은
역사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전하는 이야기이다.

스님을 만났다.
원했든 그러지 않았든 ‘달리는 스님’이라는 수식어는 이제
대둔사 주지라는 직함보다 더 많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 말은 스승에게서 받은 ‘진오’라는 이름과 나란한 또 하나의 이름이 되었다.

산중에만 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법으로 이름하여 말하는 것만 법이 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 또한
지나칠 것 없는 새로운 배움일 것이었다.

오늘은 법담을 파하고 스님이 달리는 까닭이나 여쭙자고 먼 길을 왔다는 말에 스님이 웃었고
그만하면 달리기와 함께한 스님이 꿈꾸는 세상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님의 웃음 속에 눈물이 들어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 군법사 시절 새벽예불이 예정된 산상부대를 찾아가던 눈길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한족 눈을 잃었습니다. 인생계획표에 들어있지 않은 장애를 얻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군무 중에 생긴 일로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눈을 잃는 것을 실명失明, 즉 ‘밝음을 잃는 것’으로 말합니다. 한때 빛뿐만 아니라 삶을 잃었다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군에서 나온 후, 사회복지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전화상담을 하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였는데, 상담기록 중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상담원의 말 속에 ‘그러면 교회에 나가보시라’는 권유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했던 사람의 종교는 ‘불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스님들과 함께 ‘자비의 전화’ 상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활동을 하면서 자비가 실천되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대상이 하필 이주민이어야 하는 데는 또 그만한 까닭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이 땅이라고 소외되고 외롭고 괴로운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인데, 자기 나라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위해 자비의 마음을 내고 행동에 나섰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었다.

▶ 사회복지를 배울 때 첫 강의에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실현되어야 할 대상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도 주지를 맡은 곳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구미의 대둔사였고, 노장 스님의 일을 돕고 있던 복지회관에서 관심을 갖고 있던 내용도 의지할 곳 없는 이주민들의 문제였습니다. 짧은 세월 동안에 먹고 살만해진 우리가 어느새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의 인력을 해외로 내보내 돈을 벌어와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해외로 나간 이들은 하나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나가서 했던 일은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거나 밤을 새워 환자를 돌보거나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내고 건물을 세우는 일들이었습니다. 한때는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파병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고생과 땀과 흘린 피가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땅을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모두 자기 나라에서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가 힘들고 더럽고 어렵다는 핑계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도 우리는 단지 그들이 다른 나라, 특히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들을 낮게 보고 쉽게 보고 대우해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욕을 먹어야 할 까닭도 구타를 당해야 할 까닭도 더구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기반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들이라 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그것이 스님을 길로 나가 달리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까 싶었다.
스님을 만날 날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놀란 것이 있었다.
날마다 건강을 위해 일정시간 짧은 거리를 달리는 것도 아니고
조금 달려본 이들이 하는 하프코스를 뛰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말하는 거리로 백 리가 넘는 42.195km 풀 코스 마라톤을 뛰거나
108km나 200km 또는 강화에서 강릉까지 동서를 횡단하는 308km 울트라 코스를 달리는 일정이
쉬는 달 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어떤 달은 그 중에 두 가지를 뛰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몸을 돌보지 않고 달려야 했을 만큼 절실했던 이유를 듣고 싶었다.

▶ 복지 관련 일을 하다 보면 놓이지 않는 걱정이 있습니다. 바로 예산의 문제입니다. 바깥에서는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또 그럴 만한 사건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 만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이주민들이 많은 것도 불리했고, 주민 수가 많지 않은 소도시라는 점도 불리한 점이었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지원을 받고 아름다운 기부가 이어지게 할 방법이 무엇일까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런 끝에 찾아낸 것이 달리는 것이었다면
달리는 것에 유난한 특기를 가진 몸이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 강화에서 출발해 강릉 경포대까지 한반도의 동서를 횡단하는 308km를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은 3일 동안을 달려 64시간 안에 리니시 라인을 통과해야 기록이 인정된다. 그러고도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는 힘이 남아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 기부와 기부참여자 모집에 목표를 둔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만행萬行으로 만행萬幸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만 명이 행동하면 많은(만)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기가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에 온 베트남 청년 노동자 토안이 교통사고로 뇌의 1/3을 잃은 사고였습니다. 한국인의 과실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뇌의 1/3 가량을 잃고서도 이 청년은 우리 사회에서 받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km에 100원을 기부하는 달리기를 짧은 거리 아닌 장거리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말로만 도와달라고 하기보다는 내 몸의 땀을 흘려 만들어내는 요청이라 훨씬 명분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처음 생각했던 것은 108km를 달리는 후원금 10,800원을 백 명에게서만 받을 수 있어도 백만 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에서였습니다. 그랬던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큰 후원을 받게 되었고, 그 뒤로는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예컨대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그쪽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안전헬멧을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또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를 운영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그러다가 알게 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땅을 찾아온 외국인 여인들이 한국인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생활피폐 등을 피해 탈출하는 사례들에 대해 도움을 줄 필요성이 생기면서 달려야 할 이유가 만들어지고, 그럴 때마다 기부를 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킨 장거리 마라톤에 도전을 하게 되어 100km를 달리고 200km를 달리고 급기야 308km 동서횡단 마라톤까지 뛰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동안 달렸던 거의 모든 코스에서 낸 기록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코스에서 목표하는 바가 완주하는 것에 있을 뿐, 몇 등으로 들어오느냐는 것과 기록을 이전전보다 얼마나 단축했느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기록으로만 말하자면 매번 제한시간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를 해서 골인하는 부끄러운 수준이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내는 제 자신에게 높은 점수를 주곤 합니다.

그래도 아껴야 할 것이 몸 아니겠는가.
더 많은 회수와 더 긴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라도
전신의 체중을 받아내는 무릎이 상할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님이 달리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주목을 하게 되고
신문과 라디오, TV들도 앞다퉈 취재를 해가는 상황이 되고
그로 인해 해보려던 일에서 상당한 성과들이 나타났다.
베트남 청년 토안은 몇 차례 외과적 수술을 마치고 퇴원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고
동남아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안전헬멧나누기에서도 500개를 구입할 기부금이 모아져서
구미지역뿐만 아니라 인근의 다른 지역 이주노동자들에게까지 나눠줄 수 있었다.

아무리 부처님 법을 전하는 수행자이기로서니
보통의 마라톤 코스를 달리는 것도 아니고
잠도 자지 않고 달리는 울트라 마라톤을 하면서 무슨 생각으로 달리는지 궁금했다.
단지 이루고자 하는 원력 하나만이 달리는 힘의 모든 것일 수 있을까.

▶ 동서횡단 308km를 달릴 때는 골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코스 대관령을 넘을 때 환각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땅을 딛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눈앞에서 헛것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불교계를 원망하기도 했지요. 내가 이렇게 몸이 부서지게 달리기까지 불교계가 나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인가 싶었고, 불교를 배우는 자리에서마다 그렇게 강조해서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단지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내 나라 사람들의 행복뿐인가 싶었습니다. 온갖 유정과 무정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말하는 행복 속에 지구에 사는 사람들조차 들어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저 짧은 말을 하는 동안 스님은 몇 차례 말을 잇지 못하더니
끝내는 눈물을 보이고 그러다가 울먹이더니 눈물을 훔쳤다.
스님의 눈물이 그치고 끊어졌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앞에 두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지더니
스님의 말을 듣고 있던 우리 둘의 눈에도 어느새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 대둔사를 찾아가던 날 가을가뭄을 걱정하던 전국에 비가 촉촉하게 내렸고, 나는 청법순례를 만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스님이 흘리는 눈물을 보았다.

 

 

 

 

 
 

 

 

 

▶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촛불을 밝히는 것에 대한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빛이, 초가 자기 몸을 태워 내는 빛이 남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 몸이 부서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먼 길을 달리고 나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내가 달리는 이유를 묻고, 그렇게 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람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한번은 피니시 라인을 지난 후에 서있을 수도 없을 만큼 탈진해서 주저앉아 있었는데, 한 신문사 기자가 다가와서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 옷에 붙어있는 기부내용을 보았을 테니 신문기자가 듣고 싶었던 말이 내 하소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지요. 달릴 때만 해도 나를 길거리로 내몰아 달리게 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는데, 골인을 한 뒤에 찾아오는 안도와 뒤이어 이루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그 원망은 어느새 감사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달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고, 땀이 빛이 되는 귀한 경험을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뒤
스님을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 일들이 생기면서
거절 못하고 해야 할 일이 늘고, 따라서 달려야 할 일도 자꾸 늘어나는 모양이었다.
‘달리는 스님’으로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인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배우는 말이 ‘때리지 마세요’에서 요즘은 ‘월급 주세요’로 바뀌었답니다. 이 말이 풍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좋은 분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 ‘악덕’이란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남아있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낯선 땅에서 외로운 이들이 힘에 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일정 기간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땀 흘려 마련한 기반으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살만한 나라가 된 우리 나라 국민들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배려와 회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퇴원을 기대하고 있는 베트남 청년 토안의 귀국 이후 생활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새로운 기부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토안의 손상된 뇌 부위가 언어와 계산에 관계되는 곳이라, 낯선 나라에서 꿈을 잃은 토안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이후에 항구적인 생계대책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얄궂게도 한국사람의 과실로 일어난 사고로 뇌를 잃은 토안이 이 나라에서 받아 갈 수 있는 보상금이라는 게 토안이 받던 한 해 급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토안의 귀국에 맞춰 토안의 고향 베트남에서 지금까지 달린 것보다 더 긴 코스를 달려볼 생각입니다. 당장 급한 것은 토안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달려야 할 사람의 항공권부터 마련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스님은 우리사회의 약자를 부처님으로 보겠다는 원을 세웠고
그 원을 이루기 위해 몸에 있는 지방을 태워 달리는 방편을 채택했다.
몸을 버려서라도 원을 이루겠다는 것이 서원을 하는 이의 마음일 터이지만
달리기로 한 이상 다른 어느 곳보다 무릎 다치지 마시라고 당부 말씀 드렸다.
스님은 불법을 받들면서도 불교계를 옹호하지는 않았다.
행동하지 않는 불교는 살아있는 불교가 아니라고 했고
살아있지 않은 관광불교는 스님이 꿈꾸는 바가 아니라고도 했다.
많고 큰 것을 꿈꾸고 바라지만 사실 변화는 작은 것에서부터
그리고 한 사람이 생각이 바뀌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 옛날에는 개 짖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릴만한 곳에 절을 지었다는데 요즘엔 절에서 강아지 보는 게 어렵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산과 들이 있고 마음 정갈한 이들이 머무는 곳이니 강아지도 전생에 지은 선업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검은색 강아지가 스님 신발에 코를 박고 자고 있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겨우 70일이 지났다는 강아지는
사람들 발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이 잠들어있었다.
일만 원의 자비를 단 한 차례 실천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뀌게 할 수 있다면
그 자비를 실천하는 데 가리고 주저할 까닭이 무엇이겠는가.
땀에 젖어 냄새 나는 신발조차도 강아지에게 깊은 잠을 안기는 선물이 될 수 있는데…….

(촬영: 2011년 10월 14일, 구미 대둔사에서 이오)
▶ 진오 스님의 활동공간: 꿈을 이루는 사람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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