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태워야 빛이생깁니다.(불교포커스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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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꿈을이루는사람들 댓글 0건 조회 1,939회 작성일 18-08-30 19:02본문
몸을 태워야 빛이 생깁니다 | ||||||||||||||||||
여덟 번째 인연 - 구미 대둔사 주지 본원진오 스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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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한 편으로 나라 안이 꽤나 요란스럽게 들썩거렸다. 영화를 본 시민들은 분노했고 영화 ‘도가니’를 매개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여름을 사라지게 했을 만큼 지루하게 비 내린 지가 얼마나 되었다고 전국에 가을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는 제대로 들어맞아서 복우산伏牛山이라니 소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일 테고 스님을 만났다. 산중에만 법이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아버렸는데 오늘은 법담을 파하고 스님이 달리는 까닭이나 여쭙자고 먼 길을 왔다는 말에 스님이 웃었고 ▶ 군법사 시절 새벽예불이 예정된 산상부대를 찾아가던 눈길에서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한족 눈을 잃었습니다. 인생계획표에 들어있지 않은 장애를 얻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군무 중에 생긴 일로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눈을 잃는 것을 실명失明, 즉 ‘밝음을 잃는 것’으로 말합니다. 한때 빛뿐만 아니라 삶을 잃었다고까지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군에서 나온 후, 사회복지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전화상담을 하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할 때였는데, 상담기록 중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전화를 걸어온 이와 이야기를 나누던 상담원의 말 속에 ‘그러면 교회에 나가보시라’는 권유사항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전화를 걸어와 상담을 요청했던 사람의 종교는 ‘불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뜻있는 스님들과 함께 ‘자비의 전화’ 상담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 활동을 하면서 자비가 실천되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더라도 그 대상이 하필 이주민이어야 하는 데는 또 그만한 까닭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이 땅이라고 소외되고 외롭고 괴로운 이들이 없지 않을 것인데, 자기 나라를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이주민들을 위해 자비의 마음을 내고 행동에 나섰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을 것이었다. ▶ 사회복지를 배울 때 첫 강의에서 들은 말이 있습니다. 사회복지가 실현되어야 할 대상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도 주지를 맡은 곳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은 구미의 대둔사였고, 노장 스님의 일을 돕고 있던 복지회관에서 관심을 갖고 있던 내용도 의지할 곳 없는 이주민들의 문제였습니다. 짧은 세월 동안에 먹고 살만해진 우리가 어느새 잊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우리도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의 인력을 해외로 내보내 돈을 벌어와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해외로 나간 이들은 하나같이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나가서 했던 일은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거나 밤을 새워 환자를 돌보거나 열사의 사막에서 길을 내고 건물을 세우는 일들이었습니다. 한때는 자유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젊은이들을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곳으로 파병하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의 고생과 땀과 흘린 피가 오늘의 한국을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땅을 찾아오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모두 자기 나라에서는 상당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가 힘들고 더럽고 어렵다는 핑계로 하지 않으려고 하는 일들을 해내고 있는데도 우리는 단지 그들이 다른 나라, 특히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사람들을 낮게 보고 쉽게 보고 대우해야 할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한국인들에게 욕을 먹어야 할 까닭도 구타를 당해야 할 까닭도 더구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기반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는 이들이라 할 수 있는데도 우리는 그들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더라도 그것이 스님을 길로 나가 달리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까 싶었다. ▶ 복지 관련 일을 하다 보면 놓이지 않는 걱정이 있습니다. 바로 예산의 문제입니다. 바깥에서는 달리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만, 또 그럴 만한 사건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 만큼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보다 이주민들이 많은 것도 불리했고, 주민 수가 많지 않은 소도시라는 점도 불리한 점이었습니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자 생각했습니다. 지역의 경계를 넘어서까지 지원을 받고 아름다운 기부가 이어지게 할 방법이 무엇일까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런 끝에 찾아낸 것이 달리는 것이었다면
▶ 기부와 기부참여자 모집에 목표를 둔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만행萬行으로 만행萬幸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만 명이 행동하면 많은(만)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기가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에 온 베트남 청년 노동자 토안이 교통사고로 뇌의 1/3을 잃은 사고였습니다. 한국인의 과실로 일어난 교통사고로 뇌의 1/3 가량을 잃고서도 이 청년은 우리 사회에서 받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당장 급한 수술비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1km에 100원을 기부하는 달리기를 짧은 거리 아닌 장거리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말로만 도와달라고 하기보다는 내 몸의 땀을 흘려 만들어내는 요청이라 훨씬 명분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요. 처음 생각했던 것은 108km를 달리는 후원금 10,800원을 백 명에게서만 받을 수 있어도 백만 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단순한 계산에서였습니다. 그랬던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큰 후원을 받게 되었고, 그 뒤로는 새로운 일이 생길 때마다, 예컨대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그쪽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안전헬멧을 제공하는 일을 하면서, 또 이주노동자들의 쉼터를 운영할 필요성이 생기면서, 그러다가 알게 된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땅을 찾아온 외국인 여인들이 한국인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생활피폐 등을 피해 탈출하는 사례들에 대해 도움을 줄 필요성이 생기면서 달려야 할 이유가 만들어지고, 그럴 때마다 기부를 할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킨 장거리 마라톤에 도전을 하게 되어 100km를 달리고 200km를 달리고 급기야 308km 동서횡단 마라톤까지 뛰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 동안 달렸던 거의 모든 코스에서 낸 기록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코스에서 목표하는 바가 완주하는 것에 있을 뿐, 몇 등으로 들어오느냐는 것과 기록을 이전전보다 얼마나 단축했느냐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기록으로만 말하자면 매번 제한시간에 아슬아슬하게 턱걸이를 해서 골인하는 부끄러운 수준이지요.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내는 제 자신에게 높은 점수를 주곤 합니다. 그래도 아껴야 할 것이 몸 아니겠는가. 아무리 부처님 법을 전하는 수행자이기로서니 ▶ 동서횡단 308km를 달릴 때는 골인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코스 대관령을 넘을 때 환각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땅을 딛고 달리는 것이 아니라 몸이 공중에 떠서 날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눈앞에서 헛것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불교계를 원망하기도 했지요. 내가 이렇게 몸이 부서지게 달리기까지 불교계가 나를 위해 해준 것이 무엇인가 싶었고, 불교를 배우는 자리에서마다 그렇게 강조해서 말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단지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과 내 나라 사람들의 행복뿐인가 싶었습니다. 온갖 유정과 무정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말하는 행복 속에 지구에 사는 사람들조차 들어있지 않은가 싶었습니다. 저 짧은 말을 하는 동안 스님은 몇 차례 말을 잇지 못하더니
▶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촛불을 밝히는 것에 대한 아무런 감흥이 없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그 빛이, 초가 자기 몸을 태워 내는 빛이 남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 몸이 부서져도 좋다는 생각으로 먼 길을 달리고 나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내가 달리는 이유를 묻고, 그렇게 해서 이루고자 하는 바람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한번은 피니시 라인을 지난 후에 서있을 수도 없을 만큼 탈진해서 주저앉아 있었는데, 한 신문사 기자가 다가와서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대답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내 옷에 붙어있는 기부내용을 보았을 테니 신문기자가 듣고 싶었던 말이 내 하소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었습니다’라고 했지요. 달릴 때만 해도 나를 길거리로 내몰아 달리게 한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한 원망이 있었는데, 골인을 한 뒤에 찾아오는 안도와 뒤이어 이루어질 일들을 생각하면 그 원망은 어느새 감사한 마음으로 바뀝니다. 달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고, 땀이 빛이 되는 귀한 경험을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한 뒤 ▶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는 말이 ‘안녕하세요’인 것은 다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배우는 말이 ‘때리지 마세요’에서 요즘은 ‘월급 주세요’로 바뀌었답니다. 이 말이 풍자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잖아요. 좋은 분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 ‘악덕’이란 말로 표현되는 사람들이 남아있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낯선 땅에서 외로운 이들이 힘에 겨운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이주노동자들이 이 땅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일정 기간 열심히 일하고, 그렇게 땀 흘려 마련한 기반으로 자기 나라로 돌아가 자기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는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살만한 나라가 된 우리 나라 국민들의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배려와 회향이기도 할 것입니다. 단기적으로는 퇴원을 기대하고 있는 베트남 청년 토안의 귀국 이후 생활터전을 마련해주기 위해 새로운 기부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토안의 손상된 뇌 부위가 언어와 계산에 관계되는 곳이라, 낯선 나라에서 꿈을 잃은 토안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이후에 항구적인 생계대책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얄궂게도 한국사람의 과실로 일어난 사고로 뇌를 잃은 토안이 이 나라에서 받아 갈 수 있는 보상금이라는 게 토안이 받던 한 해 급료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토안의 귀국에 맞춰 토안의 고향 베트남에서 지금까지 달린 것보다 더 긴 코스를 달려볼 생각입니다. 당장 급한 것은 토안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달려야 할 사람의 항공권부터 마련해야 하는 일이겠지요. 스님은 우리사회의 약자를 부처님으로 보겠다는 원을 세웠고
문을 열고 나오는데 검은색 강아지가 스님 신발에 코를 박고 자고 있었다. (촬영: 2011년 10월 14일, 구미 대둔사에서 이오) http://www.bulgyofocus.net/news/articleView.html?idxno=64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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